[3장] 영적으로 각성이 일어난 니고데모 매일 말씀/요한복음2011/02/14 01:09
10절 말씀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어느날 예수님께 바리새인이자 유대인 지도자인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랍비인 것으로 보입니다. 지도층으로 이스라엘인들을 이끌어 가는 사람인 것 입니다.
이 사람이 밤중에 예수님을 몰래 찾아옵니다. 무엇인가 진리를 갈구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 입니다.
오늘 밤 니고데모에게는 아주 놀라운 시간이 될 것 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지금까지 보지 못한 것들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며 영적 각성이 일어날 것 입니다.
니고데모에게 일어났던 이런 일이 지금 이 시간에 우리에게도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는 니고데모를 통해 오늘 바로 이시간에 우리에게 놀라운 말씀을 주고 계십니다.
2절말씀을 봅시다.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니고데모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들을 보았습니다. 그 표적을 보고 그가 하나님으로 부터 온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니고데모가 본 것은 현실이었던 것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보고 믿는 것 보다 보지 않고 믿는 것에 대해 더욱 칭찬하셨습니다.(요 20:29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의 시각을 환기시키십니다.
3절 말씀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이것은 "너는 현실의 표적을 보고 나를 보고 있구나, 더 중요한 것이있다. 네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나라다. 이것은 표적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거듭나야만 볼 수 있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들은 항상 눈에 보이는 것이 집중하고 집착하곤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주께서 보고 계시는 것을 보지 못하고 우리에게 보여지는 것만 보고 끝내버립니다.
니고데모는 진리에 더욱 가까이 다가갑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질문 합니다.
4절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니고데모는 아직도 현실에서 시선이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사람들의 한계 입니다.
예수님은 한정된 우리의 시각을 넓혀 주십니다.
5절~6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그렇습니다. 우리의 시각은 육에만 한정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시각을 갖아야 합니다. 이것은 육의 시각이 불필요한 것이고 버려야 할 것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육의 시각과 더불어 영의 시각을 갖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영의 시각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서 모세가 말한 것들을 올바로 보지 못했고, 예수님의 말씀들을 우리의 한정된 시각으로만 바라보고 있어서 올바로 깨닫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영적인 시각을 갖으려면... 예수님께서 바라보시는 것을 볼 수 있으려면 우리는 거듭나야 한다는 것 입니다. 그 거듭남은 물과 성령으로 가능하다고 분명하게 말씀해 주십니다.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람(성령의 음성으로 해석되기도 함)이 오는 곳과 가는 곳을 우리가 볼 수 없듯이 성령의 오심과 우리를 인도하심은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각 개개인의 상황에 따라 성령님께서 친히 주관하셔서 우리를 이끌어가십니다.
오직 우리가 마음의 문을 활짝열고 성령의 존재를 인정하고 모셔들이면 성령께서 오십니다.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사건이며 본인 외에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사건 입니다.(물론 방언, 예언, 신유 등 외적 증거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니고데모는 이러한 명확한 설명을 듣고도 아직 마음이 굳어있어 이런 일을 인정하지 못합니다.
9절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10절~11절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
예수님께서는 안타까워하십니다.
"너는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어갈 사람인데 왜 이런 것을 모르냐? 내가 말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지어낸 말이 아니라 내가 하늘에서 본 분명한 사실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다.
너희들은 내가 땅의 일을 말하는 것도 받아들이지 못하니...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알아들을까......."
예수님은 땅의 일 육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처음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영적인 존재도 될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 하십니다. 이런 영적 각성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이런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바리새인들과 같이 나 정도의 신앙을 가진 사람이 어디있느냐고 교만한 자세로 고고한 자세로 서 있습니다.
영적 각성 일어나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 그런 삶을 살지 못합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봐야 할 것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내사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기를 원하십니다.
사람들은 이런 간단 명료한 사실을 잊어버리고 삽니다.
교회 내에서도 사업을 벌여 이윤을 남기는데 눈이 어두워있습니다.
자신 혹은 조직의 명예를 높이는데 눈이 어두워있습니다.
여러가지 그럴듯한 명분으로 색칠하여 눈이 어두워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모든 것들을 치워버리고 내가 원하는것은 단순한 한가지 뿐이라고 환기시켜주십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은 분명합니다.
침례 요한이 주의 길을 닦아 놓았듯이.... 주님을 증언하는 사람이 되었듯이....
이제 심판의 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우리는 사람들에게 전파해야 합니다.
심판의 때가 다가오고 있고,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많은 신앙인들이 빗나간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말씀은 그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데 가치가 있고 빛이 나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시험을 주고, 구원에서 더 멀어지도록 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가 오실 것이고 그가 심판하실 것임을 전하는 것에 우리의 한계를 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들을 심판하러 오는 것이 아닙니다. 심판권은 오직 하나님의 명을 받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전해 할 곳에서 전해야 합니다.
18절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36절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우리 모두 니고데모와 같이 육적인 시선에만 매달려 성숙하지 못한 신앙인이 되지 않도록 합시다.
성령을 인정하고 모셔들여 영적각성이 일어나 진정한 하나님 나라를 보고, 그 나라를 전파 하도록 합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의 길이고, 영생의 길이며, 심판을 피하는 길임을 전파 합시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만이 참되시다는 것을 증거합시다.
오직 하니님의 말씀만 전파 합시다. 이 말씀으로 성령께서 한량없이 우리를 깨우치셔서 우리를 인도해 주실 것 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 니고데모는 이 일 후에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요 7:50~51에서 유대인 지도자들이 예수를 비난했을 때에는 예수님을 변호합니다.
"그 중의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그들에게 말하되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심판하느냐"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후에는 아리마대 요셉과 함께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 매장했습니다.
니고데모에 대해 정교회의 전승에는 후에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가 되어 유대인들에게 순교를 당하였다고 합니다.
우리도 니고데모와 같이 영적 각성이 일어나 변화되고, 올바른 지도자, 신앙인이 되어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요한과 같은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